
게임 속 세계는 눈으로 먼저 이해하기 마련이지만, 몸에 남는 기억은 대개 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캐릭터가 분노하고, 망설이고, 결심하는 그 짧은 호흡 하나가 장면의 무게, 몰입도를 바꾸곤 하죠. 같은 문장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서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게임 보이스 디자인은 단순히 캐릭터의 대사를 녹음해 전달하는 일을 넘어섭니다. 세계관의 온도를 정하고, 캐릭터의 결을 드러내며,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믿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엔씨 Media Sound Design실 보이스디자인팀은 이러한 무게감 속 게임 캐릭터의 목소리를 설계합니다. 시나리오를 읽고, 캐릭터를 해석하고, 성우와 함께 감정의 밀도를 조율합니다. 기획과 연출, 기술 사이에서 방향을 맞추며 게임 안에서 가장 직접적인 감각을 만드는 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보이스"

Q. 반가워요. 게임 보이스 디자인은 생소한 분야인 터라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대나무숲 팀장 엔씨 Media Sound Design실은 게임 안에서 들리는 모든 사운드 제작에 참여하는 조직입니다. 단순히 효과음을 만드는 것을 넘어, 게임 안에서 출력되는 컷신, 시네마틱, 보이스를 포함해 ‘들리는 영역’ 전반을 다룹니다.
실 안에는 여러 팀이 있는데요. 미디어 사운드팀은 시네마틱이나 컷신에서 각 IP마다 감정 포인트를 사운드로 어떻게 부각할지 연구하고 디자인하고요. 엔지니어링 팀은 녹음 전반과 폴리(Foley) 사운드 제작, 음악 믹스, 기술적인 환경을 담당합니다. 각 파트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믹스하고 다듬는 작업도 하고 있고요.
저희 보이스디자인팀은 그 안에서 ‘목소리’를 담당해요. IP와 장르, 시나리오, 캐릭터에 맞는 성우를 캐스팅하고, 녹음 현장에서 디렉팅을 진행해요. 이후 편집과 후반 작업을 거쳐 게임에 구현되도록 정리하죠. 게임 속 세계관과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를 만드는 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Q. 게임 속 캐릭터의 목소리를 캐스팅, 디렉팅하며 만드는 일인 만큼 매우 드문 직무라고도 생각되는데요. 각자 어떤 경로로 이 직무를 선택하게 되셨나요?
대나무숲 팀장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드문 직무라 저희 역시 채용할 때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웃음) 제 경우엔 음악을 전공하다가 방향을 바꿨어요. 학창시절 제가 좀 더 경쟁력 있는 분야를 고민하던 중 포스트 녹음실에 들어갔고 광고, 게임, 교재, 홍보물 등 다양한 오디오 작업을 했습니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녹음 후반 작업뿐 아니라 성우 섭외, 캐스팅, 비용 협의, 고객 상담, 현장 디렉팅까지 전부 경험했습니다. 고객사의 요구가 매번 달라서 그걸 맞추는 소통 경험이 쌓였고요. 그러다 엔씨에 해당 직무 공고를 보고 지원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진GPT 저는 원래 성우를 준비했어요. 4년 정도 공부했고, 방송국 시험도 여러 번 봤는데 연기자로 가는 길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졸업 후 오디오 콘텐츠 제작 PD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 일 역시 성우와 협업하는 일이었고요. 연기 공부 노하우와 제작 디렉팅 경력을 활용해 이후 애니메이션 한국어 더빙 디렉터로 일하던 중 엔씨 공고를 보고 도전해 지금 팀과 함께하고 있어요.
도구리 저는 보컬 전공을 했어요. 예체능계 직종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능과 운도 어느정도 따라야 성공하는 소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다른 방향도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학교에서 과제 제출용 녹음을 도와주면서 흥미를 느꼈고, 엔지니어로 더빙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더빙을 작업했어요. 하지만 완성된 시나리오로 작업하다 보니, 캐스팅 속 새로움을 찾는 작업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반대로 게임은 처음부터 세계를 함께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Q. 게임 보이스 디자인은 다른 장르보다 창작의 폭이 넓은 듯하네요. 세 분 모두 보이스가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대나무숲 팀장 유저 입장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사운드는 보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효과음은 좋다, 안 좋다를 느끼더라도 디테일한 피드백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런데 보이스는 다르죠. 듣는 순간 바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유저가 연기가 어색하다 느끼면 즉각적으로 “더빙 별로인데?”라는 반응이 나오고, 반대로 잘 되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생깁니다. 또 기능적으로도 중요한데요. 예를 들어 캐릭터의 특정 대사를 듣고 “이제 페이즈가 바뀌는구나”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토리 이해 역시 보이스를 통해 전달되고요. 대사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유저가 장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죠.
진GPT 시나리오의 전달력은 결국 대사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감정선이 달라집니다. 캐릭터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보이스예요. 그래서 저희는 캐릭터를 ‘살린다’는 표현을 자주 써요.
도구리 유저는 게임 설정집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캐릭터의 나이, 배경, 성격을 전부 알지 못해도,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만으로 ‘이 캐릭터는 이런 인물이다’라고 판단하게 되죠. 보이스는 캐릭터와 유저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대사와 맥락의 빈틈을 찾아 메우는 일"


Q. 실제 작업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대나무숲 팀장 기획팀에서 시나리오와 대사를 전달받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텍스트를 계속 반복해서 읽는데요. 전달받은 문서에 ‘20대 여성, 깐깐한 성격’이라고 써 있어도, 실제 대사를 읽어보면 전혀 다른 결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앞뒤 맥락을 확인하고, 이 장면이 어떤 감정선 위에 놓여 있는지 파악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앞 상황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후 성우 캐스팅을 고민합니다. 캐릭터의 이미지가 최종 확정된 상태라면 비교적 판단이 수월하지만, 이미지가 임시적으로 결정된 단계이거나 시나리오가 일부만 전달된 경우에는 리스크가 큽니다. 또 전작과 캐릭터의 스토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고요. 캐스팅은 되돌리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결정을 내릴 때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Q. 캐스팅 이후 녹음 현장에서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나요?
진GPT 대본에 “화난다”라고 적혀 있어도, 정말 분노인지 아니면 짜증 섞인 투정인지, 혹은 농담 섞인 과장인지 장면을 보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녹음 전에 기획자분들을 많이 괴롭히는 편이에요. (웃음) ‘이 장면에서 감정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해당 캐릭터는 이 시점에서 이미 결심한 상태인가요?’ 같은 질문을 계속합니다. 기획자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최대한 정확히 알아야 성우에게 정확한 디렉션을 줄 수 있죠. 이후 현장에서는 이 그림을 성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따금 저는 제 역할을 ‘통역’이라고 여겨요. 기획자의 언어를 성우의 언어로, 때로는 성우의 표현을 다시 기획자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중간에서 조율하죠.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합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설명은 구체적인 동시에 과하지 않아야 해요.
Q. 작업 환경도 궁금해요. 엔씨 사운드센터에서의 작업은 어떤가요?
대나무숲 팀장 사운드 작업에 관련된 팀들이 한 곳에서 작업한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좋습니다. 엔지니어링을 비롯해 다양한 팀과 상의, 테스트하고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큽니다.
진GPT 각종 영상이나 시네마틱 작업을 하고 나면, 영상에 보이스만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음악도 들어가고, 효과도 들어가고. 그래서 이게 다 어우러진 결과물을 리뷰하러 믹싱 스튜디오에 종종 가는데요. 이번에 사운드센터가 돌비 애트모스로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더욱 좋아졌습니다. 저희는 보통 목소리만 듣고 작업을 하니까 전체 사운드를 한 번에 체감할 일이 많지 않은데, 각 파트의 리소스들이 믹싱이 완료되면 외부에 노출되기 전에 믹싱 스튜디오에서 담당자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리뷰를 합니다. 그 순간에 ‘그래, 이 맛에 사운드 하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때가 제일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신입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초반에 교육을 받는데, 교육 과정 중에 인기 있는 코스 중 하나가 사운드센터 믹싱 스튜디오 견학입니다. 실제로 가서 들어보면 체감이 다르니까요.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Q. 엔씨 내 다양한 IP의 보이스 디자인을 담당하는 만큼 협업 방식도 궁금해요.
도구리 저희 팀 모두 평소 기획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눠요. 시나리오가 정식으로 내려오기 전에 ‘이 캐릭터 나올 거예요’, ‘이런 방향으로 갈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두죠. 그러면 실제 대사가 나왔을 때 빠르게 연결할 수 있거든요. 또 팀 안에서도 캐스팅 논의를 많이 합니다. 캐스팅을 고민할 때 “이 성우가 이런 톤도 가능하더라”라고 서로 이야기를 자주 나눕니다. 한 사람이 모든 성우를 완벽히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이나 정보를 자주 공유해요.
Q. 그렇다면 각각의 팀원이 특정 IP를 도맡아 작업하는 편인가요?
대나무숲 팀장 엔씨 내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반해, 저희 팀은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IP별로 담당자를 고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신규 프로젝트가 생기면 작업량과 난이도를 보고 배분합니다. 한 사람이 전담하면 장점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기면 리스크가 큽니다. 그래서 서로가 어느 정도는 다른 프로젝트도 이해하고 있도록 조율하는 편이죠.
Q.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면요?
대나무숲 팀장 팀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팀 전체 운영 쪽 고민이 커요. 모두 일당백을 해내고 있기에 팀에 공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운영할 지를 항상 고민합니다. 보이스디자인 직군은 채용이 쉽지 않거든요. 경력이 있다고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IP와 파이프라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진GPT 아무래도 지난해 출시된 아이온2 작업 비중이 크죠. 보이스 비중이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연출하면서 비용을 챙기는 방법을 항상 고민합니다. 동시에 팀원의 공백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업무를 문서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요. 보이스디자인은 감각적인 일 같지만, 실제로는 계약·리스트 관리·엑셀 작업 등 문서 업무도 상당히 있거든요. 그 부분을 미리 정리해두고 있죠.
도구리 저 역시 아이온2 업무를 하다가 지금은 신규 개발 프로젝트 ‘신더시티’를 준비하고 있어요. 엔지니어 출신이다보니 보이스 이펙팅 쪽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나오는 오디오 플러그인을 비롯 다양한 기술을 찾아보고, 적용 가능성을 테스트합니다. 단순히 연기만 좋은 게 아니라, 질감이나 공간감이 더해졌을 때 캐릭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도 연구하고 있고요.
Q. 각자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물론 시나리오나 대사가 가장 큰 힘이겠지만 새로운 목소리, 작업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도 궁금합니다.
대나무숲 팀장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시나리오와 캐릭터성이 잘 살아 있는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을 자주 봅니다. 특히 해외 게임이 국내 더빙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해보기도 하고요. ‘이 캐릭터를 이런 톤으로 살렸네’ 같은 걸 보면서 참고합니다. 예전에 하던 게임도 신규 캐릭터가 나오면 찾아보고, 누가 연기했는지 확인합니다.
진GPT 저는 성우 분들의 SNS를 많이 봅니다. 출연작 홍보 피드가 올라오면 찾아서 보고, ‘이 분이 이런 배역도 가능하네’하며 빠르게 시청해보고 제 머릿속 프리셋을 업데이트하죠. 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도구리 저는 게임 트레일러와 영화 예고편을 많이 봅니다. 최근 영화들은 보이스 이펙트가 굉장히 화려합니다. 그런 질감을 게임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합니다.
Q.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매우 좁고 깊은 분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당 이 직무를 꿈꾸는 분들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도구리 많이 들어보고, 많이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더빙이 어떤 힘을 갖는지 알아야 하죠.
진GPT 자신이 떠올린 그림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제 역할을 통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어를 다루는 일인 만큼, 설명 능력이 중요합니다.
대나무숲 팀장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담당자, 파트 사이에서 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요. 소통을 잘하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봅니다.
Q. 세 분이 생각하는 보이스디자인팀은 어떤 팀인가요?
진GPT 끈끈한 드림팀.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적은 인원이 똘똘 뭉쳐서 뭐든 해내기 때문이에요.
대나무숲 팀장 꿀 케미팀. 이보다 더 좋은 케미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도구리 나에게 가장 소중한 팀. 항상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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